
본 명 : 사무엘 마샬 레이미 / Samuel Marshall Raimi
생년월일 : 1959년 10월 23일
출 생 지 : 미국 미시간주 로양 오크
이 명 : 셀리아 에이브람스
R.O.C. 스텐스톰 등
직 업 : 영화 감독, 배우, 제작자, 각본가
활동시기 : 1977년 - 현재
배 우 자 : 질리언 그린 (1993년 - 현재)
미니 바이오
샘 레이미는 란제리 샵을 운영하는 어머니 셀리아 바바라와 가구점을 운영하는 아버지 레너드 로날드 레이미 사이에서 5형제중 4번째 아들로 로얄 오크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그후 그는 유년기를 미시간주 버밍햄에서 보내게 됩니다. 레이미는 보수적인 유대교를 믿는 집안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의 선조는 러시아와 헝가리에서 이민을 왔다고 합니다. 레이미의 큰 형인 샌더는 1968년 수영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고 하고 그의 둘째 형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이자 각본가로 샘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의 동생 테드 레이미는 배우로 그의 영화와 드라마에 다수 출연하게 됩니다. 샘의 누나인 앤드레이 레이미 루빈은 속기사로 영화 산업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레이미는 그로브 하이 스쿨을 나오고 미시건 주립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였다고 합니다. 
1980년대 영화 컬트 컬트
샘 레이미는 아버지가 무비 카메라를 사오던 날 부터 영화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단짝 친구인 브루스 켐벨과 함께 슈퍼 8mm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대학에서 동생의 룸메이트 였던 로버트 테이퍼트 그리고 절친인 브루스 캠블과 의기 투합하여 "윗인더 우드"(1978년)라는 32분짜리 단편을 찍게 됩니다. 이들은 "윗인 더 우드" 찍기 위해 $14.00의 제작비를 마련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샘은 친구와 가족 그리고 인맥을 이용하여 제작비를 마련하여 $375,000이 들어간 컬트 호러 영화 "이블 데드"(1981년)을 찍게 됩니다. "이블 데드"는 컬트 히트작이 되며 샘 레이미의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샘 레이미는 이블 데드의 후속으로 "크라임 웨이브"(1985년)를 찍게 되지만 스튜디오의 간섭으로 잣은 문제를 낳고 결국 흥행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볼 기회가 없었네요.

샘 레이미는 호러 장르로 귀환하여 제작비 $ 3백5십만불을 들여 전작인 이블 데드를 패로디하여 슬랩스틱으로 재 창조한 "이블 데드2"를 내놓게 됩니다. 팬들의 환영을 받은 영화이지만 박스 오피스에서 큰 이득을 남기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브루스 켐블이 다시 애쉬역을 맡아 호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샘 레이미는 코믹 마니아로 "쉐도우"를 영화화 하려고 하지만, 결국 판권을 획득하지 못하여 자신만의 슈퍼 히어로를 만들게 됩니다. 리암 니슨을 주인공으로 한 1990년에 제작된 "다크맨" 입니다. 이 영화는 샘의 첫 메이져 진출작으로 유니버셜에 의해 제작이 되게 됩니다. $1천 6백만불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모두 $48,878,502불을 거두어 들이게 됩니다. 기대 보다는 저조한 성적이였지만 대니 알프맨의 스코어와 리암 니슨이 연기한 "다크맨" 역시 상당한 컬트 팬을 거느린 영화가 되었습니다. 오감을 잃은 주인공이 인공 피부를 쓰고 악과 대항 한다는 스토리가 신선했던 영화였습니다.

"다크맨"의 흥행 부진으로 차기작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의 롱 타임 파트너인 로버트 테이퍼트와 함께 이블 데드 3편 격인 "아미 오브 다크니스"를 제작하게 됩니다. 아미 오브 다크니스는 호러 영화라기 보다는 판타지가 가미된 코미디 영화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11,000,000이 투자 되어 $21,500,000를 거두어 들이게 됩니다. 비록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컬트 팬을 양산하였고 이블 데드 시리즈 삼부작을 통해 브루스 캠블이 연기한 애쉬는 슈퍼 히어로 급 인기를 얻게 됩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어리버리하고 엉뚱한 히어로의 탄생이지요.

1990년대 시련의 시기
90년대에 들어 샘은 장르의 다변화를 꾀하게 됩니다. 1995년 샘은 샤론 스톤과 진 핵크먼 그리고 러셀 크로우가 출연한 "퀵 앤 데드"라는 서부극을 선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트라이 스타에 의해 배급된 이 영화는 $3천 5백만불이 투입되어 $1천 8백 6십4만불을 거두어 들이며 박스 오피스 플롭 영화가 되며 그의 영화 경력에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후 샘은 1998년 빌 팍스톤과 빌리 밥 손톤을 기용하여 범죄 스릴러 "심플 플렌"(1998)을 찍게 됩니다. 평론의 갈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1천 7백만불의 제작비가 투입되어 $16,311,763을 벌어 들여 다시 한번 박스 오피스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심플 플렌"은 소설의 원작자가 직접 스토리를 썼고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게 됩니다. 대니 알프먼의 음악이 인상적이였고 영화도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샘 레이미는 1999년 케빈 코스트너와 켈리 프레스톤을 기용하여 "사랑을 위하여"를 찍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박스 오피스 봄을 경험하게 됩니다. $8천만불의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겨우 $ 5천만불만 거두어 들이게 됩니다.

2000년대 다시 날다.
샘 레이미는 2002년 제임스 카메론의 프로젝트 였던 "스파이더 맨"을 연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대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억 4천만불의 제작비를 들여 총 $821,708,551를 거두어 들이는 빅 히트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샘 레이미가 재 해석한 스파이더맨과 CG를 이용하여 보여지는 역동적인 액션은 관객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게 됩니다.

스파이더맨의 성공은 곧 후속작을 잉태하게 됩니다. 스파이더맨 2는 2년후인 2004년 제작비 $2억불이 투자하여 초 대형 블록 버스터로 개봉하여 모두 $ 783,776,341을 벌어들이게 됩니다. 이제 샘 레이미에게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2007년 샘 레이미는 $ 2억5천8백만불이 들어간 스파이더맨3를 연출하여 총 수입 $890,871,626을 벌어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샘은 팬들로 부터 너무 많은 빌리언이 등장하여 어수선하다는 질타를 받게 됩니다. 사실 스파이더맨 2때 부터 소니의 간섭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연출하지 못한 샘은 스파이더맨 4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테리 프렛쳇 원작의 "더 위 프리 맨"의 감독으로 내정되게 됩니다.

샘 레이미는 팀 버튼이 "배트맨 포에버"에서 퇴출을 당하자 후임으로 연출을 하기 원했으나 조엘 슈마허에 밀린 아픈 기억이 있다고 하는 군요. 당시에는 슈마허의 명성이 샘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샘이 원하던 대로 "배트맨 포에버"를 연출 하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합니다. 한편 레이미는 조엘 코엔이 "이블 데드"의 편집을 담당했을때 부터 코엔 브라더스와 함께 공동작업을 하였다고 합니다. 코엔은 샘과 함께 "크라임웨이브"와 "허드서커의 대리인"을 공동 집필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서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 군요.
샘은 일본의 호러 영화 주온의 헐리우드 리메이크 "그루지 1,2,3"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또한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따르면 샘은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 격인 "호빗"의 연출을 원했으나 결국 피터 잭슨은 길예르모 델 토로에게 선택하게 됩니다. 샘은 잭 라이언 시리즈 "바이 애니 민스 네서서리"에 연출을 제의 받고 디즈니로 부터는 "W.I.T.C.H."의 연출 제의 받기도 합니다. 한편 샘은 2009년 초심으로 돌아가 컬트 호러 "드래그 미 투 헬"을 $3천만불의 예산으로 찍어 $86,117,189의 흥행 성적을 올리게 됩니다.

2009년 블리자드 앤터테인먼트는 샘 레이미가 자신들의 히트 게임인 "워 크래프트"를 연출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은 워 크래프트 팬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2009년 샘은 초심으로 돌아가 "스파이더맨 4"를 찍겠다고 발표하지만 소니와의 불화로 결국 스타이더맨 시리즈에서 하차를 하게 됩니다. 많이 아쉬워 한 팬들이 많으시리라 봅니다. 현재 샘은 소니가 자신의 드림 프로젝트인 "쉐도우"를 버리자 다른 스튜디오를 설득하고 있다고 합니다.
TV 시리즈
그는 90년대 TV 시리즈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1995년 뉴질랜드에서 로케를 감행한 "헤라클레스 : 레전더리 저니"는 신화의 퓨전을 한 형태의 시대극의 지표를 열게 됩니다. 그후 "제나 : 워리어 프린세스"도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후 "아메리칸 고딕", 클레오파트라 2525, "M.A.N.T.I.S" 그리고 잭 오브 올 트레이드를 제작하게 됩니다. 또한 테리 쿳카인드의 베스트 셀링 판타지 "스워드 오브 트루스"를 리메이크한 "레전드 오브 더 시커"의 시리즈를 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파르타커스: 블러드 앤 샌드"를 제작하기 도 합니다.

스타일
그의 영화와 TV 시리즈에는 그의 죽마고우인 브루스 켐블과 동생 테드 레이미가 거의 등장하여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이들 삼총사는 대학 시절 부터 영화를 함께 했다고 합니다. 또한 레이미는 그의 정신적 멘토인 알프레드 히치콕과 같이 자신도 자주 카메오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의 트라이드 마크 적인 연출 스타일을 보면 먼저 "이블 데드"에서 선보인 기법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일인칭 시점으로 카메라가 따라 가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살에 눈이 달린 듯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블 데드에서는 악령의 시점으로 피해자를 행해 빠르게 다가가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다른 그의 특기는 트랙킹 샷입니다. 먼곳에 있는 대상이 갑자기 화면 중앙에 보여지는 것입니다. 또한 오버 랩핑한 클로즈 업 샷과 함깨하는 몽타주 시퀀스도 그의 특기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 유명한 손가락으로 뿔 만들기를 하고 있군요.
사생활
레이미는 1993년 우리에게 "보난자"로 유명한 배우 론 그린의 딸 질리언 다니아 그린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5명의 자녀를 두었고 엠마 로즈, 론 그리고 헨리는 "드래그 미 투 헬"과 "스파이더맨 3"에 엑스트라로 출연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종종 그의 형인 이반과 함께 각본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드레그 미 투 헬", "다크 맨" 그리고 "이블 데드 3"가 이들의 공동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가 어떤 영화를 만들던 응원하는 팬들이 많으니 부디 멋진 후속작으로 보답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래 봅니다. 파이팅입니다. 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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