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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16:51

네이키드 런치 / Naked Lunch (1991년) Sci-fi 영화


감 독 : 데이빗 크로넨버그

원 작 :  윌리엄 S. 버로그스

스토리: 데이빗 크노넨버그

연 : 피터 웰러, 주디 데이비스, 이안 홈, 줄리안 샌즈, 모니크 메르큐어, 니콜라스 켑벨, 마이클 잴니커, 로이 샤이더 외

음 악 : 하워드 쇼어

편 집 : 로널드 샌더스

촬 영 : 피터 서스치즈키

제작비 : 1천8백만불





어떤 날은 쉽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끌리는 날이 있고, 또 어떤 날은 머리에 테러를 가하는 좀 심각한 영화가 재미있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보고 싶은 스타일의 영화가 이렇게 변동을 하게 되는 데, 모든 영화를 한 시각으로 바라 보고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 것 보다 말이 안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화를 한번 대충 보고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 아니~ 아니되오~"라고 말하고 싶군요. 아무튼 요즘 며칠, 조금 고민을 할 일이 있어 머리를 많이 썼다고 생각을 했는 데, 전에도 여러 차례 보았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네이키드 런치]가 땡기는 것 같더군요. 그러잖아도 머리가 아픈데 골치 아픈 영화를 보고 싶다니, 가학적인 성향이 있나 잠시 생각을 하다가, 영화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지인에게 부탁을 하여 DVD를 빌려다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왜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었는 지, 조금은 깨닿게 되었는 데요. 전에는 간과 하거나 무시하고 넘어갔던 점을 다시 보고 싶었고 다시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더군요.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원작까지 찾아 봤으나 결국 구하지는 못했지만, 몇일간 서점을 뒤졌던 열정을 보였던때가 있었는 데, 정말 당시와 지금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비교하면 요즘은 정말 영화팬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 인 것 같습니다. 한 예로 당시 프리츠 랑의 [니벨룽의 노래] 2부작과 [스파이더] 2부를 찾아보기 몇달간 시간이 날때 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모두 뒤졌지만 허사였던 기억이 주마등 같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에야 여유만 있다면 (아, 그리고 카드가 있어야 하는 군요) 아마존이나 다른 사이트를 통해 해외 구매도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보고 싶은 VHS 나 BETA 비디오 테잎을 구하기 위해 만리도 불사하고 쫓아 다녔고, 오매불망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 비디오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을 때는 눈물까지 나오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당시에는 영화가 소중 했는 데요. 아무튼 이 영화도 말레이시아에서는 심한 가위질 끝에 개봉을 한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검열이 되지 않은 미국판으로 불법으로 복사한 비디오 테이프를 페탈링 스트리트에서 구입한 기억이 있네요.

 


다시 본 네이키드 런치는 작가와 글 그리고 작가와 관객 그리고 모두가 약에 취한 모습을 보여주며 강한 풍자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히 기괴하다고 치부를 했던 것을 기억을 하는 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더군요. 운명적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주인공의 이야기가 평형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말해도 될만큼 강렬한 메타포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무언가에 취해 살고 있는 바로 [네이키드 런치]의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강렬하고 기괴한 바디 호러 스타일의 터치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 입니다. 아무튼 영화 전체가 사이키델릭한 느낌이 강한 것 같더군요. 다시 봐도 불쾌함이 가득하지만, 굳이 이런 방법까지 써서 말하고 싶었던 작가나 크로넨버그의 의도를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역시 비주류라는 것은 다시 한번 깨닿게 되었습니다. 아무나 소화 하기 힘든 영화이기 때문이겠지요. 1999년을 기억을 해도 같은 가상현실을 다루더라도 워쇼스키의 [매트릭스]와 조세프 루스넥의 [13층]에 비교하면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바디 호러 스타일을 접목한 [엑시즈텐즈]는 가장 독특했다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는 1952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해충 엑스터미네이터(해충 박멸가)인 주인공 윌리엄 리는 살충제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고 보스와 다투고 실직 위기에 접하고, 사라진 살충제는 아내 조안이 마약으로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 하게 됩니다. 경찰은 빌을 체포하나 마약이 아니라 살충제임을 강변하게 됩니다. 그동안 살충제에 노출이 되었던 빌은 자신이 그간 척살해온 바퀴벌레 모양을 한 곤충에게 아내를 죽이라는 환영을 보게 됩니다. 이 벌레는 자신의 인터존이라는 회사의 특수 요원이라고 밝히게 됩니다. 이 벌레 등에는 기괴 스러운 입이 달려 있는 모습을 보면 당시나 지금이나 불쾌하기는 마찬 가지인 것 같습니다. 빌은 아내가 작가인 친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목격 하지만 이미 이성은 거의 마비된 상태로, 의사가 처방을 해준 마약 해독약을 투입을 하게 됩니다.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하고도 뻔뻔한 아내에게 윌리엄은 윌리엄 텔 놀이를 하자고 제의를 하고 아내는 유리잔을 머리에 얹어 놓게 됩니다. 그리고 빌의 권총에서 떠난 총알은 아내의 머리를 관통하게 됩니다. 실제 원작자가 작가가 된 경우도 술을 먹고 장난으로 윌리엄 텔 놀이를 하다가 아내를 살해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을 하는 카오스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인간상과 원작자의 삶과 소설의 코드가 잘 맞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데이빗 크로넨 버그는 주인공에게 환각 때문이라는 면죄부를 주는 동시에 우연히라도 모든 것을 잃어야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 한 것으로 보이더군요. 그리고 윌리엄은 곤충이 언급을 한 인터존으로 경찰을 피해 도주를 하게 됩니다. 아무튼 리는 아내를 살해한 권총을 전당포에맡기고 구한 타이프 라이터로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글로 써내려 가려고 합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타자기를 기괴한 곤충 때로는 외계인과 같은 모습 그리고 성행위에 최적화된 괴물과 같은 모습을 보여지게 됩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그려낸 1950년대라는 가상 공간은 제가 본 관점으로는 하나의 지옥도와 같이 무언가에 취해 정체성을 잃고 사는 사람들을 그려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더군요. 그러나 윌리엄이 피신해온 인터존에는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계속 더 기괴한 일을 겪게 됩니다. 작가가 그려내는 환상과 그에 취하는 독자들에 대한 메타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는 데요. 문제는 너무도 복잡하게 나열을 하여 시간이 지나도 쉽게 접하기에는 그리 쉬운 것 같지 않더군요. 리는 글을 마치고 자신이 살해한 아내와 꼭 닮은 조안 프로스트라는 유부녀와 함께 인터존을 떠나 안네지아라는 곳으로 탈출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리에게는 시작과 같은 끝을 맺어야 하는 상황에 맞닥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영화들은 보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생각에 따라 지옥도, 혹은 천국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닿게 되는 것 같은데요.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우리의 의지로만은 불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출을 자주 보여주게 됩니다. 불쾌하면서도 우리 주변에있는 암울한 상황을 극대화 하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모두 보고 있으니 따로 할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덧글

  • FlakGear 2012/10/05 00:33 # 답글

    정말 최근 영화빼고는 이해할 수 없는 감독인것 같아요 -ㅁ- 요즘에서나 이런 물에서 손을 떼신것 같은데... 비디오드롬때도 그렇고 사람의 감정의 변화와 그에 따른 주변 상황의 변화를 자신만의 비유로 표현하는 것 같구요.

    사실 보다보면, 기묘해서, 공포만 주는게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블랙조크로 읽혀질 수 있을 것 같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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